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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말보다 더 좋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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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좋은 일만 보고 듣고 하면 참 좋겠지만 힘든 일이 하나씩 생기고 그런 일을 극복해 가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은 살면서 고민이 없을 수 없는 존재이인데요. 이게 나이가 들면 점점 더 걱정이 많아질 수 밖에 없더라고요. 나에게도 안 좋은 일이 닥치기도 하고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위로를 해 주면 될까요? 뭐,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위로의 말도 달라지고요. 장례식이 80이 넘은 부모 장례식에 갈 때와 40대에 아내를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장례식과 불의의 사고로 20대 아들이 죽은 장례식에 갈 때의 마음가짐도 다르죠? 그 사람과 내가 어떤 사이냐에 따라 할 수 있는 말도 달라집니다.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 때는 세상 살다보면 참 많습니다.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찌 해야 될지 잘 모르고 그래서 쉽게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힘내. 다 잘 되거야’하는 말입니다. 많이들 이리 말씀하시지요? 딱 보기에는 위로를 전하는 덕담같습니다. 니가 힘을 내었으면 좋겠어, 앞으로 상황은 좋아질 거야.. 이런 말이잖아요. 나는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게 내 마음이야.. 이런 의미죠

그런데 이런 말 들으면, 별로 힘이 안 나지 않으셨어요? 일단 낼 힘이 힘든 일 당한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인거죠. 지금 이 상황도 꾸역꾸역 억지로 이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내 나름으로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말인데 위로가 안 되는 상황인 거지요. 정말 힘든 사람들의 귀에는 이런 긍정의 위로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힘든 일을 당하게 되면 자기 껍데기 안으로 숨어버립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곱씹고 곱씹어요. 내가 한 잘못을 끄집어내서 자책하고 후회하고 있는 겁니다. 혹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지 걱정하게 되요. 과도한 자기 몰입상태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거는 지극히 정상이에요. 인간을 원래 그리되는 존재입니다.

쉽게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채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때 심정이 어떠세요? 내가 뭘 잘못해서 연인이 나를 찼나? 계속 고민을 하고 있지요? 또 나의 영혼의 반쪽이 억지로 떼어져 나간 상황에 나의 삶의 의미가 뭘까? 이런 거 도돌이표 생각이 나의 머리를 꽉 채웁니다.. 그때 친구가 ‘야! 지금 말하는데 니 전남친 별로였어. 너같이 괜찮은 애는 더 근사한 남친이 생길거야’이리 위로해 주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귀에 들립니까? 안 들리죠.

그런데 우리는 위로를 해 준답시고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을 힘든 사람에게 전하는 실수를 하고 살아갑니다. 니가 힘내기를 바래, 너는 앞으로 꽃길만 걸을 거야. 이런 말들이 상대방을 향해서 하는데 상대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는 거죠. 힘든 상대에게 내 말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봐주는 겁니다. 너가 지금 정말 마음이 힘들겠구나.. 하는 말 귀에 들어온다는 거지요. 니가 속상하겠구나. 마음이 아프겠구나.. 이런 말이 상대방을 봐주는 겁니다. 흔한 말로 이런 멘트를 우리는 ‘공감’이라고 합니다. 공감은 심리학 책이나 자기 계발서 이런 데서 스테디셀러로 희자되는 컨셉이거든요. 그만큼 공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외래에서 제 환자분이셨는데요. 자기는 사람이랑 만나면 말을 잘 못해서 대인관계가 별로여서 말을 잘해서 대인관계를 잘 맺어보고 싶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무슨 강연 이런데서 말을 잘하는 것처럼 하는 말이 대인관계에서 말을 잘하는 거라고 잘못 생각을 하셨더라구요. 제가 그 분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누구씨! 누구씨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안 보시잖아요. 상대방이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상대가 왜 저런 생각을 했는지.. 이런 거 안 보시잖아요. 이 상황에 내가 할 적절해 보일 다음 말이 무얼지? 그것을 고민하시기 때문에 상대방과 대화가 매끄럽지 않은 겁니다.. 라고 제가 말한 적이 있어요. 이 공감은. 어려운 것이 압니다.
그냥 상대방의 속마음을 뚫어지게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냥 저절로 알 수 있는 겁니다. 그 마음이 없이 내가 어떤 말로 위로를 전할지 고민을 하니 진정한 위로가 안 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제가 30년 알고 지낸 친구가 힘든 일을 당했습니다. 아들이 학폭 피해자가 돼서 많이 다쳤던거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뭐일까? 생각을 하다가 탄원서를 써주었는데요. 제가 법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단지 그 친구네 가족의 심정이 이러저러합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된 처벌 절차 없이 쉬쉬하면서 지나가려는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줄까봐 염려가 됩니다. 앞으로 이 문제로 인해 조카같은 피해 학생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게 되어 앞으로 사는 앞날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됩니다.. 뭐 이런 내용이였죠

이 친구가 탄원서를 받고서 저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탄원서를 읽으니 왜 그리 눈물이 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 자체로 많은 위로가 치유가 된다. 니가 써준 탄원서는 판사가 읽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위로해 주는 기도문 같은 거였구나.’ 라는 문자를 제가 받았습니다. 제가 해 준 건 그 친구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이런 점이 힘들겠구나... 이런 일들이 있을까봐 걱정이겠구나.. 이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탄원서를 써 준 거였거든요.

자, 공감은. 상대방을 향해 거울을 들고 서 상대방을 비추어 주는 겁니다. 상대방이 마음이 이렇구나.. 저렇구나..는 기본이구요. 좀 더 수준높은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 이면에 있는 것까지 읽어주는 겁니다. 너가 이런 부분을 걱정을 하고 있구나.. 니가 원하는 것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상대의 마음을 넘어 생각과 욕구까지 읽어주는 겁니다. 거기에는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과 나의 욕구를 담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틀리면 어떡하냐구요? 나름대로 마음도 유추해 보고 그 사람의 생각과 바라는 것도 유추했는데 핀트가 안 맞았어요..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손에 너를 비춰줄 거울을 들고 서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상대방에게 전해지구요. 진심어린 위로가 됩니다. 그 마음가짐은 진정성이라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위로의 힘은 진정성이거든요. 내가 너를 봐 주고 있어.. 봐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 사람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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