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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독립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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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또 한가지 우리에게 익숙해진 단어가 있죠? 꼰대라는 말인데 뭐만 하면 꼰대랍니다. 스물이 안된 아이들도 뭐만 하면 우리보고 꼰대래요. 더군다나, 자식이 나를 꼰대로 부른다. 야 이거 속이 완전이 꼬이는 거죠. 말 그대로 꼬이는데 이거죠. 자식들이 그 눈에 부모가 이미 어떤 존재로 볼 거 같다 생각하십니까? 말씀드릴까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죠. 본인들은 호모 사피엔스구요. 다른 도구를 쓰는 인류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먹고 그리고 서로 간에 교미가 안 될 정도로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며 서로 다른 인류의 서로 다른 경계선에 서서 함께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그게 바로 부모와 자녀가 아닌가 싶은데, 다 좋습니다. 꼰대 다 좋은데 내 자식한테는 그래도 덜 꼰대처럼 보이고 싶은 게 부모의 욕망이잖아요.

 

회사에서는 그렇다 쳐요. 내 부장, 내 전무, 내 이사님, 다 꼰대처럼 보이는데 적어도 나는 꼰대이고 싶지 않고 그건 내 집 안에서 내 자식에게 역시 꼰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건 부모들의 공통적인 열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요구를 모아 모아서 어떻게 덜 꼰대 기술, 덜 꼰대가 되는 바로 그 기술, 어떤 게 있을지 한번 볼까요? 제일 첫 번째 좋은 어른,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가장 괜찮은 어른 어떤 것일까? 흔히 질문하는 어른입니다. 우리가 질문이라는게 우리가 아는 대답의 상대어라고 이야기 할 텐데 가장 쉬운 말로 하자면 아는 척 하지 말고 물어보자 라는 겁니다. 우리가 20세기 인간이구요. 아이들은 21세기의 삶을 앞으로 트랜스휴먼을 지나서 포스트휴먼으로 넘어갈텐데 그 인간적 변화 그 진화의 빠른 속도 앞에 우리 같은 사람들. 얼마나 전 근대적으로 보이겠어요. 아이들이 부모 시대 경험에 관심이 없어요. 왜냐?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전공 그게 무엇이 됐든지 간에 애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이제 좀 물어봐야 될 겁니다.

 

5G시대 들어왔죠? 4차 산업시대 들어왔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트랜드 휴먼, 포스트휴먼 아이들이 모를수도 있고요. 여러분들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 빠르게 포스트휴먼에 대해 명확하게 그 정의를 얘기해 줄 거고, 포스트 휴먼이 어떤 식으로 영화에 묻어나고, sf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세요. 엄청난 속도로 여러분들에게 그 답을 제공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정확하게 데피니션, 정의도 얘기할거야. 정의가 왜 중요하냐? 정의를 정확하게 알아야지요. 그리고 그 정의속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우리는 읽어내면 되는 거예요. 우리 인류는 늙은 인류고, 과거 인류고 지난 인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데 우리가 질문한다면 새 인류가 오래된 그 올드한 인류에게 친절하고 아주 유능하게 자신들의 유능함을 보여줄 거라 확신합니다. 두 번째 아이들이 제공한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에 맞춰서 마치 춤을 추듯 기뻐해 주셔야 됩니다.

 

네가 알려주니까 진짜 최고다. 너 어떻게 이런 걸 알았니? 어떤 경우는 나도 알아. 내가 더 알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하는 그 무지가 새 세대를 새롭게 성장시키고 일으켜 세우고 환하게 밝게 웃으며 그 꼰대처럼 느껴졌던 아버지에게, 그 당시 단순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던 어머니에게 다가와서 썩소를 날리게 되는 거거든요. 알고 섞는 밀알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존재를 넘어서서 좋아해야 그 다음번에 또 한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대신 세 번째 특징이죠. 너무 자주 부르면 아니아니아니야~ 절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귀찮아요. 요새 애들은 더 귀찮아 합니다. 오죽하면 단어가 나왔죠. 귀차니즘. 올드한가요? 인간은 귀찮은 것은 일순위로 치우게 됩니다. 치워지지 않는 노력도 필요하죠. 가끔씩 묻고 그리고 어쩌다 만나서 만날 때마다 니가 그때 알려준 그 정보가 얼마나 유용했는지에 대해서 또 한번 리마인드 시켜 주는 거죠. 또 한 번 반복적으로 칭찬의 기회를 갖는 것 중요하겠죠?

 

그리고나서 빠짐없이 해야 될 게 있습니다. 물어보는 존재로서 끝나면 안돼요. 거기에 물어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부모로서의 자부심에 대해서 각인시키는 것 강조하는 것 늦춰선 안 될 겁니다. 아이들 크잖아요? 애들 숨 쉬는 것도 눈치 봐야 됩니다. 애들 재수할 때 삼수할 때 취준생이네 하고선 우리 돈 쓰면서 엄청나게 우리한테 눈치 주죠? 사랑이 명분이 돼서 했던 이 불공정계약에 대해서 우리 자부심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넘어가는가에 따라 불공정 계약이 영원히 남는 언약이 될 수 있고요. 그렇지 않고 그냥 한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는 갑질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거거든요. 다음세대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한번쯤 어떻게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에너지를 어떻게 건강하게 이동시킬까? 이것을 고민해야 될 겁니다. 다만 이전시대의 자부심하고 이 역사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한 번쯤 기억해야 됩니다. 아버지의 기여, 어머니의 장점을 반복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어요. 이 반복적 역사는 반드시 밀어내도 남아있는, 자부심의 흔적이 되고 자부심의 역사가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염려하지 말고 반복 하시기 바랍니다. 네 엄마 이거 하난 끝내줘. 니 아버지 이거 하난 끝내주지 않니? 부모의 자부심은 성인이 된 자녀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고 그 미래속에 아이들은 더 큰 더 멋진 희망찬 어른의 세계를 갖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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