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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이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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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이 세 기관의 핵심 정책토의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갑질 근절”을 천명했습니다. 즉, 기업과 기업 사이의 갑을관계 개혁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의미죠.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부당하게 저지르는 개인 간의 갑질만큼이나 기업과 기업 사이 법률관계의 갑질 또한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데요. 과연 어떤 갑질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이 같은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포스팅해보겠습니다.

 

먼저 거래상 지위 남용과 관련된 법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는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거래상 지위 남용이라는 명목 아래 불공정거래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에서 갑을 관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거래 당사자 사이에 거래상 지위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전제가 되지만, 갑이라 하더라도, 그 지위를 “남용”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것인데요. 거래상 지위 남용의 세부 유형으로는 공정거래법상 구입강제, 이익제공 강요, 판매목표 강제, 불이익 제공, 경영간섭 이렇게 5가지가 규정되어있는데요. 규정된 다섯 가지 모두 거래상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위를 이용해 거래를 강요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몇 해 전 일어났던 실제 사례를 통해, 거래상 지위 남용이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 A는 케이블방송 설치 및 관리 등의 업무를 위탁한 협력업체 B에게 신규 가입자 유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지급할 업무위탁 수수료를 감액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는 표면적으로 사업자와 상대방의 의사를 모두 반영해 합의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협력업체 B가 A사와의 거래 계약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신규 가입자 유치 목표에 달성하지 못할 경우 위탁 수수료를 감액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공정거래 위원회가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종합유선방송업자 A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거래 시정 명령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A사는 불공정거래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합의하에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었죠. 결국 A사는 법원에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시정명령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과연,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요?

 

결론적으로 법원은 A사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협력업체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저해하고, 판매목표를 강제한 것은 ‘거래상 지위의 남용행위’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콘텐츠를 보시는 분들 중에, 그렇다면 둘이 합의하에 쓴 계약서는 효력이 없는 건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소개드린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포함되어있습니다. 법원은 아무리 사업자와 상대방의 의사가 합치되어 계약을 작성했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강제할 경우엔 형식이 합리적인 것과는 별개로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앞에 사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이 타 사건과 다른 특이점이 있다면, 형사사건의 경우 공정거래 위원회에 전속고발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부당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되었거나, 구입강제, 이익제공 강요, 판매목표 강제, 불이익 제공, 경영간섭 이 같은 일을 당했을 경우 협력업체 B처럼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을 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실시해 가해 기업에게 시정명령을 내려줄 수 있다는 것이죠. 더불어 전속 고발권이 있기 때문에 위법한 사안일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고발을 진행해 재판까지 진행이 가능합니다.

 

최근 계약서에 당사자 표기로 갑이나 을 말고 위탁자/수탁자 혹은 회사 또는 개인인 당사자의 명칭을 그대로 기재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사소송을 접해 보신 분이라면 원고가 제출하는 증거는 갑호증, 피고가 제출하는 증거는 을호증, 이렇게 구분해서 표현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중요한 것은 법원에서 원고와 피고는 갑과 을로 구분될지언정 갑이 을보다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의 또 다른 이름은 갑질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분이 갑질의 주체가 될 수도 객체가 될 수도 있기에 어떤 경우에 불공정거래행위가 될 것이냐에 대한 판단 기준을 확인해 보시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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